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막의 후예 (문단 편집) == 8장 == ||베커라의 동쪽 변방에 쓰러져가는 폐가가 있었다. 지붕도 거의 다 떨어져 나갔고 발목 높이까지 모래가 들어와 있었지만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이고 머리 위엔 나뭇잎이 우거져 있어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었다. 늘 그렇듯 [[탈리야]]는 언제든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가방을 싸서 한 쪽 구석에 세워 놓았다. 가방 옆면에는 물 주머니와 염소 우유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고, 안에는 2주 동안 충분히 먹을 양의 말린 고기와 옷가지, 발로란 전역을 다니며 모은 돌멩이와 자갈을 담은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탈리야는 그늘 아래 누인 여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여인의 옆구리에 감은 붕대를 살짝 들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치료한 상처 주변에 마른 핏자국을 보고 흠칫 놀랐다. 검에 베인 상처 같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갑옷을 벗기고 조심스럽게 씻기는 동안에 본 여인의 몸엔 옆구리의 치명상 외에도 수많은 흉터가 있었다. 하나만 제외하곤 모두 전사로서, 그것도 전면에서 싸워 얻은 흉터였다. 이 여인이 누구든지 간에 그녀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은 적은 [[롤 카시오페아|단 한명]] 뿐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탈리야가 붕대를 갈자 여인은 고통스러워 하며 신음했다. 여인이 사막 한복판에서 혼자 얼마나 아파했을지는 오직 대지모신만이 알고 있었고, 잠든 그녀의 몸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싸움 잘하시죠?” 탈리야가 말했다. “잘하시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이깟 상처 얼른 이기고 일어나세요.” 여인이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을 걸어 주면 영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데에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열에 들떠 황제와 죽음에 관해 중얼거린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아이오니아]]에서 [[롤 야스오|야스오]]를 떠난 후 탈리야는 한 곳에서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혼자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다녔다. 베커라에서는 이미 계획보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잠깐 들러 식량만 사 갈 생각이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여인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가족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대지모신은 모든 인간이 삶의 씨실과 날실로 서로 엮여 있다고 가르쳤다. 실 한 올이 헤어지도록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모든 실이 헤어진다. 그래서 여인의 곁에 남아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가족을 찾지 않고 흘러가는 매 순간이 가슴 아리긴 했지만… 탈리야는 여인의 짙은 머리칼을 뜨거운 이마에서 쓸어 넘겨주고, 여인이 사이 사막 변방에서 부상을 입고 모래 속에 반쯤 묻히게 된 연유가 무엇일지 상상하며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생김새는 고왔지만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강인한 인상이 있었다. 피부는 토종 슈리마인처럼 햇빛에 그을려 어두운 빛을 띠었고, 가끔 눈꺼풀이 떨릴 때마다 보이는 눈동자는 선명한 푸른색이었다. 탈리야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제…깨어나실 때까지 제가 별다르게 해드릴 일이 없는 것 같네요.” 그 때 서쪽 방면에서 굉음이 우르릉 울렸다. 바위가 바위에 갈리는 소리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탈리야는 창가로 갔다. 처음엔 지진인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산사태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아니면 베커라 시내에서 건물이 붕괴된 걸지도. 그곳 건물들의 상태를 알면 무너졌다 해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탈리야는 다친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무슨…일이지? 여기가 어디야?” 여인의 목소리에 탈리야는 몸을 돌렸다. 여인은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무언가를 찾아 손을 더듬었다. “여긴 베커라에요.” 탈리야가 답했다. “밖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계신 걸 제가 발견했어요.” “내 검은 어딨지?” 여인이 물었다. 탈리야는 뒤쪽 벽을 가리켰다. 단단한 가죽 재질의 칼집에 싸인 여인의 기이한 무기는 귀여운 새 무늬가 그려진 담요 아래 숨겨져 있었다. “저기 있어요.” 탈리야가 대답했다. “칼날이 어찌나 날카롭던지 잘못 밟았다가는 발이 잘려 나갈 것 같아서 치워 뒀어요.” “넌 누구지?” 여인이 의심하는 투로 물었다. “제 이름은 탈리야에요.” “너 나를 아니? 너네 부족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야?” 탈리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것 같진 않은데요. 저희 부족은 유목민이에요. 천을 짜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죠. 그런데 사람을 죽이진 않아요.” “그럼 다행이네. 나를 노리는 부족이 더 많은데.” 여인은 이렇게 말하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옆구리가 얼마나 아플지 탈리야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여인은 허리를 세우다가 실밥이 당겨지자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을 왜 죽이려고 하죠?” 탈리야가 물었다. “내가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까.” 똑바로 앉으려고 애를 쓰며 여인이 말했다. “의뢰를 받아 죽인 적도 있고, 방해가 돼서 죽인 적도 있고. 하지만 요즘은 내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해서 죽이려는 사람이 더 많아.” “돌아가지 않다뇨? 어디로요?” 여인은 형형한 푸른 눈을 탈리야에게로 돌렸고, 소녀의 안에서 깊은 고통과 혼란의 우물을 보았다. “도시.” 여인이 답했다. “사막 밑에서 올라온 도시.” “그럼 그게 사실이에요?” 탈리야가 물었다. “고대 슈리마가 진짜로 부활했단 말이에요? 직접 보셨어요?”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여인이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고 있어. 대부분 동쪽과 남쪽 부족들인데 다른 부족들도 곧 가게 될 거야. 어리석은 짓이지.” “사람들이 지금 가고 있다고요?” “그래. 점점 더 많이.” “그런데 왜 돌아가지 않으려 하시는 거에요?” “질문이 너무 많아 피곤하네.” 탈리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질문은 서로를 알기 위한 첫 번째 단계잖아요.” 여인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그래도 사람을 가려가며 물어봐. 말이 아닌 검으로 답하는 사람도 있거든.” “당신도 그런가요?” “그럴 때도 있지. 하지만 넌 생명의 은인이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할게.” “그럼 하나만 더 얘기해 주세요.” “뭘?” “당신 이름이요.” “[[시비르]].” 여인이 고통을 참으며 답했다. 아는 이름이었다. 슈리마에서 시비르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탈리야는 십자 모양의 검을 보고 여인의 정체를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탈리야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낙석 소리 위로 새로운 소리가 들렸다. 고향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이오니아]]의 해변, [[녹서스]]의 땅굴, [[프렐요드]]의 얼어붙은 황무지에선 수도 없이 들어본 소리였다. 탈리야는 베커라를 빠져나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머리 속으로 계산하며 가방 쪽을 흘깃 보았다. 시비르도 소리를 듣고는 다리를 옆으로 돌려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움직이시면 안돼요.” 탈리야가 말했다. “저 소리 들려?” 시비르가 물었다. “그럼요.” 탈리야가 답했다. “꼭 비명소리 같아요.” 시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비명소리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